나의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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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당신이 돌아가지 않는지 모르겠군요."
그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그녀가 분개해서 맞받아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말을 곰곰이 곱씹어 보는 것처럼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자기도 그 이유가 궁금하다고 받아치지 않을까 두려워졌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고백을 이보다 더 감흥없이,
상대의 허영심을 전혀 기쁘게 해 주지도 않는 투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관자놀이까지 온통 새빨개져서 감히 움직이지도, 입을 열지도 못했다.
그녀의 말은 희귀한 나비 같아서...
...아주 가벼운 움직임에도 놀라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 버릴 테지만,
그대로 두면 나비 떼가 모여들 것만 같았다.
그녀가 말을 계속했다.
"당신은 적어도...
...그런 지루함 속에 아름답고 섬세하고 정교한 어떤 것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내게 일깨워 주었어요.
내가 다른 삶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조차도 그에 비하면 싸구려로 보일 정도였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심경이 복잡한지 이마를 찌푸렸다.
"가장 정묘한 기쁨을 얻으려면...
...얼마나 많은 어렵고 초라하고 천한 것들을 대가로 치러야 하는지 미처 몰랐나 봐요."
"가장 정묘한 기쁨이라..... 그런 것을 누려 왔다는 게로군!"
그는 이렇게 쏘아 주고 싶었으나, 그녀의 눈빛에 담긴 호소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당신에게는 아주 솔직해지고 싶어요.
저 자신에게도.
오랫동안 이런 기회가 오기만 기다렸어요.
당신이 나를 어떻게 도와줬는지, 당신이 나를 어떻게 바꿔 놨는지 말할 수 있도록....."
그는 눈살을 찌푸린 채 앉아서 바라보다가, 웃으면서 그녀의 말에 끼어들었다.
"그러면 당신이 나를 어떻게 바꿔 놨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녀의 얼굴에서 약간 핏기가 가셨다.
"당신을?"
"그래요.
내가 당신을 아무리 많이 바꿔 놨다 해도 당신이 나를 바꿔 놓은 것에 비하면 약과지요.
난 다른 여자가 시킨 대로 결혼한 사람 아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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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성기는 충만했고, 매일이 고상한 일로 빽빽이 채워졌다.
남자라면 누구나 살아볼만한 삶이었다.
그가 놓친 것이 있다면 인생의 꽃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 얻기 어렵고 가망없는 것이어서,
.....놓쳤다고 절망스럽지도 않았다.
.....그 기회를 잡는다는 건 그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책이나 그림 속 가공의 연인을 생각할 때처럼 막연하고 평온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그가 놓친 것 전부를 한데 뭉뚱그린 환상이 되었다.
희미하고 미약했으나, 그 환상 때문에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성실한 남편이라는 평을 받았고,
부인이 막내를 간호하다가 옮은 폐렴으로 갑자기 죽었을 때에도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들이 함께한 긴 세월을 통해 그는...
결혼이 지루한 의무일지라도,
의무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한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에서의 일탈은 추악한 욕정과의 투쟁이 될뿐이었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자랑스러이 여기는 한편으로 슬퍼했다.
어쨌거나 흘러간 옛날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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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1993년 혹은 1994년의 어느 마음 서늘한 날에,
영화로 먼저 접했던 작품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다시 읽으면서,
조금은 다른 생각, 조금은 다른 느낌을 지닌다.
지금보다 어린 그 시절에,
덜 굳어진 마음으로 보았음이 다행이었을까.....
[2009/10/2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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